다이닝 가이드 (23): 마파두부, 얼얼함과 부드러움 사이의 미묘한 합의
이름은 귀엽지만 매운맛은 진심
마파두부(麻婆豆腐). 처음 들으면 이름이 참 귀엽습니다. ‘마(麻)’는 얼얼함, ‘파(婆)’는 할머니, ‘두부(豆腐)’는 두부죠. 직역하면 ‘얼얼한 할머니의 두부 요리’쯤 되는데, 뜻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꽤나 인상적인 조합입니다. 실제로 마파두부는 중국 쓰촨 지방에서 유래한 요리로,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던 한 할머니가 두부 요리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 팔았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랍니다.
이 요리의 핵심은 부드러움 속의 강렬함입니다. 말캉한 두부를 숟가락으로 떠 입에 넣는 순간, 화자오(花椒, 산초)의 얼얼한 맛과 고추기름의 화끈함이 뒤따라오죠. 여기에 고기에서 나오는 고소한 풍미까지 더해지면, 입 안에서 부드러움과 자극이 꽤 근사하게 공존합니다.
부드럽게, 그리고 단단하게
마파두부는 재료만 보면 단출합니다. 두부, 다진 고기, 고추기름, 두반장, 마늘, 생강, 파, 화자오. 단순한 구성인데, 요리의 완성도는 디테일에서 갈립니다. 특히 두부는 살짝 데쳐서 사용하지 않으면 조리 중에 쉽게 부서지고 수분도 많이 나와요. 부드러움을 유지하면서도 단단하게 다뤄야 하는 묘한 긴장이 필요하죠.
소스는 이 요리의 주축입니다. 두반장은 풍미의 중심을 잡아주는 핵심 요소이고, 고추기름과 화자오 기름은 얼얼함과 매운맛을 더해줍니다. 화자오는 그대로 오래 두면 향이 너무 강해져서, 살짝 볶아 향을 낸 뒤 빼주는 게 좋습니다. 이런 감각 하나하나가 마파두부의 맛을 결정짓는 ‘숨은 기술’이죠.
마파두부, 국경을 넘다
요즘 마파두부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버전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한국식 마파두부는 얼얼한 향신료보다는 고추장, 고춧가루, 고추기름을 활용해 매운맛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찌개와 덮밥의 중간쯤에 있는 느낌이 강하죠. 국물까지 비워내게 되는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중국 정통 마파두부는 훨씬 기름지고 자극적입니다. 산초와 고추기름의 조합이 입 안을 지배하고, 다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기도 합니다. 두부는 큼직하게 썰어 존재감을 확실히 살리죠.
일본식 마파두부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탑니다. 미소된장이나 설탕을 넣어 단맛을 살리고, 전분을 많이 넣어 걸쭉하게 마무리합니다. 매운맛은 거의 없고, 부드러운 텍스처를 살려 어린이도 즐기는 가정식 요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익숙한 재료에서 나오는 낯선 깊이
마파두부는 한 끼 식사로도 좋고, 술안주로도 훌륭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먹든 중심에는 두부라는 익숙한 재료가 있고, 그것이 전혀 다른 세계로 변신하죠. 마치 조용한 친구가 무대에 올라가자 갑자기 멋있어지는 느낌과도 닮았습니다.
말랑하고 순한 외형 속에 화끈한 맛이 숨어 있는, 반전의 매력을 가진 요리. 그래서 한 번 맛을 보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밥에 올려 비벼 먹고, 남은 소스에 다시 밥을 비벼 먹게 되는 ‘2차전’까지 준비된 구성. 이런 요리, 많지 않죠.
레시피는 간단하지만 만만찮은
두부, 다진 고기, 두반장, 마늘, 생강, 고추기름, 화자오, 파, 물, 전분. 다들 익숙한 재료입니다. 그런데 마파두부는 ‘언제 넣느냐’가 성패를 좌우하죠. 순서, 불 조절, 타이밍. 그냥 다 넣고 볶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처음엔 화자오를 기름에 살짝 볶아 향을 낸 뒤 빼줍니다. 그다음 마늘, 생강, 고추기름을 볶아 불향을 입히고, 다진 고기를 넣어 기름을 살짝 우려냅니다. 이 시점에서 두반장을 넣으면 요리는 확 달라집니다. 감칠맛이 폭발하면서 본격적인 마파두부의 얼굴이 드러나죠. 물을 부은 후에는 큼직하게 썬 두부를 조심스럽게 넣고, 전분물로 농도를 조절한 뒤 참기름, 썬 파로 마무리.
단계는 단순하지만, 어느 하나 놓치면 금세 두부조림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만들 땐 이건 기억하자
· 두부는 미리 데치기
생두부는 부서지기 쉽고, 수분도 많이 나옵니다. 끓는 물에 소금 살짝 넣고 데쳐두면 훨씬 안정적입니다.
· 두반장은 좋은 걸로
두반장은 이 요리의 중심축입니다. 쓰촨산 프리미엄 두반장을 써 보면, 단순한 두부 요리에서 깊은 맛이 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 화자오 기름은 취향껏 조절
처음엔 신기한 얼얼함도 과하면 피로합니다. 향만 살짝 입히는 정도도 충분히 효과 있어요.
· 돼지고기도 OK
꼭 소고기를 고집하지 않아도 됩니다. 돼지고기 다짐육이 오히려 더 구수하게 어울립니다.
· 밥 없인 안 된다
마파두부는 밥과의 조합이 전제인 요리입니다. 소스를 감당할 수 있는 건 흰쌀밥뿐입니다. 밥 한 그릇, 마파두부 한 국자, 숟가락 하나. 끝났죠.
그릇 안의 센 캐릭터
마파두부는 조용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에 센 맛을 품고 있는 요리입니다. 단순한 중식 볶음이 아니라, 각국에서 독자적인 해석이 붙을 정도로 존재감 있는 요리. 자극적인 조미료를 억제하기보다, 좋은 조미료를 아낌없이 쓰는 정공법이 오히려 ‘오래가는 맛’을 만들어냅니다.
조용히 식탁에 올랐다가, 결국 식사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마파두부. 다음 다이닝 가이드에서도 이런 ‘숨은 주인공’ 같은 요리를 한 그릇 준비해보겠습니다.
맛있는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