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닝 가이드

다이닝 가이드 (33): 크림파스타, 하얀 접시 속의 안도감

도슐랭ㅡ 2025. 6. 15. 08:05

사진 = 나미나미우나미 블로그 / 안산 더져니 크림파스타

 

 

 

입 안에 퍼지는 건 맛보다 기분이다

크림파스타를 먹고 있을 때,
사람들은 “이게 진짜 맛있다”라고 하기보다는
“오랜만에 이게 당기더라”라고 말합니다.
맛에 대한 논리보다,
그냥 기분으로 끌리는 음식이라는 뜻이죠.

실제로 크림파스타는 재료나 조리법보다 분위기와 감정이 먼저 움직이는 요리입니다.
뭔가 피곤한 날,
기분 좋은 날,
친구랑 와인 한 잔 할 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이 하얀 접시 속의 부드러운 파스타입니다.

 


크림은 어떻게 입맛을 설득하는가

크림은 느끼하다는 평가를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느끼함이 좋아서”
“입에 남는 그 꾸덕함 때문에”
크림파스타를 찾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건 버터나 오일이 주는 기름기와는 또 다른 종류의 지방감입니다.

· 버터는 혀를 눌러 앉고,

·  올리브오일은 입 안을 미끄러지듯 감싸지만,

·  크림은 혀를 부드럽게 감고, 뺨 안쪽까지 퍼져나갑니다.

그러니까 이건 맛이라기보단 감촉,
그리고 그 감촉이 주는 정서적인 안정감에 가까운 거죠.
‘맛있다’보다 ‘편하다’,
‘자극적이다’보다 ‘기분 좋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본격 요리인가, 아니면 밥 대신 먹는 간식인가

크림파스타는 종종 정체성이 모호한 음식입니다.

·  정찬이라기엔 가볍고,

·  간식이라기엔 양이 많고,

·  혼자 먹기엔 애매하고,

·  여럿이 먹기엔 너무 진하죠.

그런데도 크림파스타는
카페 메뉴판, 패밀리 레스토랑, 분식집, 급식 식판, 편의점 도시락까지
우리 식문화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이 있는 거죠.

사실 이건 ‘맛있어서’라기보단
‘익숙해서’ 선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적 먹던 크림스프,
빵 찍어 먹던 화이트소스,
심지어 옛날식 맥앤치즈와도 연결되면서
우리가 무의식 중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조합이죠.


크림파스타는 하나가 아니다

우리가 ‘크림파스타’라고 부르는 건 사실 꽤 많은 버전이 섞여 있습니다.

·  베이컨과 양파, 마늘이 들어간 기본형

·  새우, 오징어, 조개가 들어간 해산물 버전

·  심지어 불고기나 닭갈비가 들어간 한식 혼종형도 있죠

이 모두를 하나로 묶는 건 단 하나,
화이트 소스의 부드러움입니다.

사실 이 부드러움은,
면보다 소스 자체가 주인공인 요리를 만들어냅니다.
면은 소스를 위한 전달체고,
토핑은 식감과 시선을 위한 장식에 가깝죠.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면보다 소스를 먹는 음식이야."

 


‘꾸덕한’과 ‘묽은’ 사이에서 사람들은 갈린다

크림파스타를 먹을 때 가장 큰 취향 차이는
꾸덕하게 졸인 농도냐,
우유처럼 흘러내리는 묽은 스타일이냐입니다.

·  꾸덕한 쪽은 진하고 진지합니다.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될 정도로 소스가 묻어나고,
먹고 나면 입 안에 크림의 코팅이 남죠.

·  묽은 쪽은 가볍고 스르륵 넘어갑니다.
좀 더 스프처럼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잘 맞습니다.

재밌는 건,
둘 다 좋아하는 사람보다 둘 중 하나를 강하게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
그래서 크림파스타는 단순히 맛의 문제가 아니라
입안에서 어떤 여운을 남기고 싶은가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느끼하다’는 말이 욕이 되지 않는 유일한 요리

보통 음식에서 "느끼하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크림파스타는 예외예요.
"느끼해서 맛있다"
"느끼한 게 당길 때가 있다"
"오늘은 좀 느끼하게 가고 싶다"

이건 어떤 감각이 아니라 기분의 상태입니다.

·  오늘은 좀 눌러 앉고 싶은 날

·  자극보다는 감싸주는 맛이 필요한 날

·  건강식이 아니라 ‘기분식’을 찾는 날

그럴 땐 딱히 이유 없이 크림파스타가 생각나는 날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음식은 ‘기분’과 아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 먹고 남은 소스, 거기엔 유년의 기억이 있다

크림파스타는 먹고 나면
접시 바닥에 소스가 한 겹 남습니다.
거기다 빵을 찍어 먹는 그 마지막 한 입이,
어쩌면 이 요리의 하이라이트일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그건

·  크림스프를 식빵에 찍어 먹던 유년

·  베샤멜소스 한 숟갈에 빵을 비비던 기억

·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어 만든 우리들만의 소스 문화

이 모든 걸 하나로 품고 있는
작은 타임머신 같은 순간이니까요.

크림파스타는 누가 뭐래도
우리 세대가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양식의 상징입니다.
정통도, 변형도 필요 없고
그냥 "하얀 그 맛"이 먹고 싶을 때
우리는 다시 이 접시를 찾게 됩니다.

다음에도 인상적인 한입을 담아올게요.
맛있는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