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닝 가이드 (34): 로제파스타, 누구와도 어울리는 붉은 중간지대
기억 속의 토마토와 크림 사이
토마토 소스는 약간 시고,
크림 소스는 좀 느끼하다면,
그 둘을 반씩 섞으면 어떨까?
로제파스타는 그렇게 탄생한 음식입니다.
처음부터 정통이란 이름을 달고 등장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 날부턴가 가장 대중적인 파스타 메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죠.
어린이도, 어른도, 파스타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조차도
"로제는 괜찮던데"라고 말합니다.
이건 단순한 조합 그 이상입니다.
서로 다른 개성이 부딪히지 않고, 부드럽게 감싸는 중간지대.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대부분의 음식이
이런 쪽에 가까운 것 아닐까요?
붉지만 부드럽고, 진하지만 무겁지 않다
이탈리아 현지에는 ‘로제’라는 소스 명칭은 없습니다.
토마토에 크림을 섞은 파스타가 있긴 하지만
이걸 따로 이름 붙여 팔지는 않죠.
그런데 한국에선,
이 애매한 조합에 딱 맞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로제(Rosé), 프랑스어로 '장밋빛'.
붉은 토마토의 명랑함과
하얀 크림의 온순함이
섞여서 생긴 오묘한 분홍빛.
이 소스는 말 그대로,
색부터 ‘중간’의 매력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맛도 그래요.
토마토의 산미는 눌러주고,
크림의 느끼함은 중화되고,
대신 그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부드럽고 진한, 균형 잡힌 풍미가 생겨납니다.
매운 로제, 바질 로제, 떡볶이 로제
로제는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파스타' 일지도 모릅니다.
기본 로제에
· 매운맛을 추가하면 불로제,
· 바질을 섞으면 그린로제,
· 크림을 늘리면 화이트로제,
· 떡볶이로 넘어가면 로제떡볶이.
이쯤 되면 파스타를 넘어서
소스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셈이죠.
심지어 피자, 리조또, 라이스누들까지
로제 소스를 품은 메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맛은,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 스며드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로제에 빠졌을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무 강하지 않아서, 오히려 오래 남기 때문.
토마토의 산미, 크림의 지방감,
그 둘을 중화시킨 로제는
처음 먹을 때의 인상은 강하지 않아도
먹고 나면 편안함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 편안함이 다시 떠오를 때,
우리는 로제를 다시 찾게 되죠.
어쩌면 이건
‘이 맛이 최고야!’라기보다는
‘이 맛은 싫을 수가 없어’라는 종류의 동의입니다.
로제는 그런 음식입니다.
이 질감이야말로 ‘로제’다
로제파스타를 한 입 먹었을 때 느껴지는 건
자극적인 산미도, 무거운 크림의 밀도도 아닙니다.
오히려 입 안을 천천히 감싸는 촉감이죠.
꾸덕함과 묽음 사이,
느낌상 ‘크림 토마토 수프에 면을 휘감은 것 같은 부드러움’입니다.
그래서 로제는
면이 소스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소스가 면을 껴안고 흐르는 느낌을 줍니다.
그게 로제파스타 특유의 식감이에요.
그리고 이 부드러운 흐름이
한국인 입맛에는 유독 잘 맞습니다.
밥이나 국수를 먹을 때도
국물과의 조화에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언제부터 이렇게 유행했을까
로제라는 단어는 원래 와인에서 유래했지만,
요리로서 로제파스타가 확실히 유행한 건
2010년대 중반 이후입니다.
한창 ‘까르보나라=크림파스타’로 알고 있던 시절,
갑자기 크림에 토마토를 더한 로제가
신선한 변주처럼 느껴졌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시작해서
카페, 분식집, 편의점 도시락, 심지어 배달앱 메뉴까지
로제파스타는 어느새
‘파스타 입문자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지’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로제떡볶이가 등장하면서
이 소스는 완전히 하나의 ‘트렌드’가 됩니다.
로제떡볶이, 소스를 다시 발명하다
크림도, 토마토도 아니었던 로제가
떡볶이와 만났을 때,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이거야말로 밸런스다.”
기존 떡볶이는 매운맛이 중심이었지만,
로제 소스가 들어가면
· 맵지 않아서 아이들도 먹을 수 있고
· 부드러워서 튀김도 잘 어울리고
· 묘하게 고급스러운 느낌까지 더해집니다
이건 단순히 소스가 응용된 게 아니라
소스 자체의 지위가 바뀐 사례입니다.
이제 로제는 파스타뿐 아니라
떡볶이, 돈가스, 피자, 리조또까지
모든 탄수화물의 친구가 되었죠.
로제를 가장 맛있게 먹는 순간은
로제파스타는 사실 '맛있게 먹는 법'이 복잡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팁이 있다면:
소스가 넉넉한 집을 고르세요.
로제는 면보다 소스가 주인공이니까요.
매콤한 토핑을 곁들이면 좋습니다.
베이컨, 마늘, 청양고추 한 조각만 있어도
크림과 토마토의 평온함 속에 작은 파문이 생깁니다.
마지막 한 입은 빵으로 마무리
접시에 남은 로제소스를
따뜻한 빵에 살짝 찍어 먹는 그 순간,
비로소 이 식사가 완성됩니다.
로제파스타는 말하자면
감정의 파스타입니다.
어떤 날은 크림이 부담스럽고,
어떤 날은 토마토가 심심할 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음식이죠.
자극을 피하고 싶을 때,
입 안을 달래고 싶을 때,
누군가와 나란히 무난하게 밥을 먹고 싶을 때
우리는 다시 로제를 찾게 됩니다.
다음에도 인상적인 한입을 담아올게요.
맛있는 하루 보내세요.